비로소 제대로 된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것일까.마냥 환호하기에는 아직 이르다.저들은 오랜 기간 권력을 장악해 본 경험을 지녔다.무엇이 되었건 결사적으로 반대하며 예전의 상황으로 되돌리려 안간힘을 쓸 것이다.지난 가을 무렵부터 지속된 촛불 행렬이 우리에게도 적잖은 가르침이 되어주었다고 난 믿는다.모든 것은 결국 옳은 방향으로 갈 것이다.세월호 참사가 발발한 지도3년의 시간이 지났다.처음에는 적잖은 이들이 분노했다.그토록 많은 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공감을 자아낸 것이다.하지만 시간은 모든 것을 무뎌지게 만들었다.대다수가 일상에 치이며 세월호로부터 멀어졌다.아예 대놓고 “아직도” 세월호냐며 불쾌함을 표한 이들도 증가했다.달라진 게 무엇 하나 없음에도 그랬다.그들은 일상을 그리워했다.결코 정상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감각하게 떠밀리다 보면 어쨌건 살아지는 그런 일상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했다.파레토의 법칙이라 하는 게 있다. ‘80대20의 법칙’으로도 불린다.전체가100이라고 했을 때 사회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것은20명이라는 이 말은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고스란히 적용 가능했다.모두가 침묵하고 외면할 때 소수의 사람들은 달리 행동했다.그들은 남들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요,그렇다고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정도로 조직화된 단체에 소속된 것도 아니었다.현실에 분노한 그들은 제 일상으로부터 변화를 도모했다.무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마음을 실천한 것이 그들의 시작이었다.처음에 한두 번도 사실은 쉽지가 않다.이 책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이들은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나갔다.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자발적 결단이었다.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았다는 그들의 외침이 나를 반성케 했다.뉴스를 보고 경악하는 것 외에 난 무얼 했던가!가방에 노란 리본을 달고 몇 차례 기억팔찌 펀딩에 참여하고는 일말의 짐을 덜었다고 자부했던 듯하다.어떻게 저렇게까지 연대할 수가 있을까? 3년간 한결 같은 모습을 보여온 이들의 일상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동일인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들의 삶은 변화했다.그저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그리 됐다며 겸연쩍어 하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의 눈엔 눈물이 그득했다.세월호 참사를 제3자에게 일어난,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된 것이다.안산에서,광화문에서,그들 중 일부는 활동을 하며 유가족이라 불리는 분들과 관계를 쌓아가기 시작했다.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상처를 안은 것으로도 모자라 사회를 상대로 억울한 죽음을 소명하는 싸움을 전개해야만 하는 기구한 운명이라니.옆에서 이 힘겨운 싸움을 바라보고,때론 함께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절실하게 느꼈던 것 같다.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나 또한 억울하게 자녀를 잃지 말란 법은 없다.왜 누구는 온몸으로 흐느껴 울 수밖에 없는데,왜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다 못해 비난에까지 앞장서는 것일까.난 여전히 이와 같은 차이의 원인이 뭔지 알지 못한다.세월호 참사가 아니었더라면 원하는 곳에 취업,진학 등을 할 수 있었던 이들이 기꺼이 제 미래를 내려놓았다.자신의 선택이었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지만,그로 인해 짊어져야만 하는 것들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잘 안다.가능하다면 익명성 뒤에 숨어 보고 싶기도 하다.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쉬운 길을 택하고 싶기에.하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더더욱 세월호 참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충분히 다른 결론을 써 내려갈 수도 있었는데 정부는 가능성을 포기했다.세월호 참사는 돈이나 효율성 등의 차원으로 평가해선 안 되는,인간 존엄성을 배반한 일이었다.
세월호참사와 함께한 시민들의 3년(2014~2017)을 기록한 인터뷰집.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4.16연대가 기획한 첫 번 째 책으로 사무원이자 희생자 초상화가 최강현씨, 음악가이며 기독교인인 김환희씨, 팽목항 자원봉사자 국슬기씨, 제주도 세월호 기억공간 ‘리본Re:Born’ 운영자 황용운씨, 회사원이자 416 약속지킴이 이경숙씨, ‘엄마의 노란 손수건’ 회원 가족 정유라, 목선재, 목종찬씨, 유가족들 도우미이자 현 청년당 공동위원장 김수근씨, 세월호 법률대리인이며 ‘거리의 변호사’였던 현 국회의원 박주민씨, 대구 상인동의 자발적 활동가 이명희 박기일 부부 등 시민 10여명이 희생자 유가족들과 더불어 ‘길거리에서 보낸 3년간’을 담았다. 이 글은 무명의 시민들과 세월호 유가족들의 연대의 기록이기에 앞서, 고통에 처한 한 인간에게 다른 인간이 기꺼이 손을 내밀고 부둥켜안은 범상하고 보편적인 고백담이다. 다음카카오의 크라우드 펀딩 시스템인 ‘같이 가치’(https://together.kakao.com)를 통해 네티즌 5천여 명의 후원을 받았으며, 2017년 한국출판산업진흥원의 콘텐츠 창작기금을 지원받았다.
들어가며
산도르 마라이 소설 [열정]의 한 대목
1. 그려보면 아이들이 다 예뻐요
희생자의 초상을 그리는 화가, 사무원 _ 최강현
2. 아줌마, 나는 그냥 아줌마예요
‘범생이’를 벗어던진 음악가, 기독교인 _ 김환희
3. 안 끝났으니까
팽목항 자원봉사자, 수도권 지하철역 서명지기 _ 국슬기
4.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요
제주도 세월호 기억공간 ‘리본Re:Born’ 운영자 _ 황용운
5. 시대가 원하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광화문에서 노래하는 소녀_ 장한나
6. 그때도 저는 엄마니까요
회사원이자 416 약속지킴이 _ 이경숙
7. 잊지 않을게
‘엄마의 노란 손수건’ 회원 가족 _ 정유라, 목선재, 목종찬
8. 나오십시오
청년당 공동준비위원장 _ 김수근
9. 곁에 있을 수 있으니까
‘거리의 변호사’였던 국회의원 _ 박주민
10. 집 앞이 곧 광장이지요
대구 상인동의 자발적 활동가 _ 이명희 박기일 부부
추천사
2014년 4월 16일은 절대로 잊을 수가 없습니다 _ 전명선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단원고 2학년 7반 故 전찬호 군의 아버지)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_ 전인숙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대외협력분과장(단원고 2학년 4반 故 임경빈 군의 어머니)
너무 평범한 사람들의 세월호 분투기(奮鬪記) _ 박래군 4.16연대 공동대표
나오며
에필로그
카테고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