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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념의 조형


7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의 읽으면서 두 가지를 느낄 수 있었는데, 하나는 서두에 나남문학선의 의미에 대해 설명되어 있는 글을 보고 감동을 느꼈다는 것이다. 한때 문학은 위대했다는 말로 포문을 연 이 글은 특히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문학이 지성의 왕자이며 문화의 공주였고, 인간 정신의 가장 고고한 경지는 문학을 통해 탐구되었다는 점을 언급한다. 이제 위대한 문학은 과거의 유산이 되려 하고 있다면서 새로운 전자문명과 낯선 대중문화가 불길처럼 퍼지고 있으며 금전주의가 선도하고 있는 세상에 한 줄기 빛이 되고자 나남문학선을 펴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느낀 것은 이 책이 문학이라는 범위를 뛰어넘어 철학 책에 가깝다는 것이다. 물론 편집자가 서론에서 밝힌 대로 이 땅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청년들과 일반 독자들께 김우창의 텍스트야말로 사고실험을 위한 최고의 텍스트라 언급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편집자가 책 맨 뒤에서 이를 명징하게 풀어놓았지만 이미 이 어려운 텍스트들을 힘겹게, 그리고 이해하기 매우 힘들어하며 겨우 읽어낸 시점이었다.편집자는 이 책의 마무리에 작가론을 펼치며 김우창의 학문세계는 문학비평이나 영문학 논의를 처음부터 훨씬 넘어서서 사회와 정치, 예술과 철학, 역사와 문화 그리고 문명의 문제를 두루 포괄한다는 것, 그리고 한국인문학은 김우창에 이르러 사유의 고매함에 이르렀다는 점을 지적했던 것이다. 어쨌든 고려대 영문과 교수로 문학비평 쪽에서 꽤 유명하신 분이기에 문학 비평서의 관점에서 이 책에 접근했지만 이 책 자체가 김우창 교수의 다양한 글과 논문들을 집대성 한 것이기에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 책의 발간에 붙여 김우창 교수가 쓴 서두 격인 글만 해도 70여 페이지가 넘는다. 책의 앞쪽에는 문학의 본질, 현실속의 문학에 대한 탐구가 다루어진다. 글을 쓰는 일은 여러 가지 사실들을 하나의 일관성 속에 연결하려는 노력이며, 사실들을 모아 사실들의 전체 내지 전체성에 이르고자 하는 일, 또는 거꾸로 준비한 전체성으로 사물들을 재단하려는 것이라 정의하고 있다. 사람이 사는 세계 전체를 언어로 표현하고 그것을 체계화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지적 노력의 근본 동기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어떤 이유로인가 사람은 언제나 계속되는 서사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면서 사람은 일어났던 일을 다시 이야기해야 하는 운명이고, 자신도 자신의 삶을 이야기 속에 살고 있다는 언급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에 대한 부작용이 있다고 말한다. 폭발하는 정보의 시대인 오늘이 있기 훨씬 이전에도 과다한 정보들이 진정한 정신적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점을 경고하여야 한다고 느낀 사상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유사 기억으로 공급되는 정보는 진열의 대상이 되고 자기 과시의 수단이 되며, 집단적 소통 수단이 되었을 때는 사람을 미치게 하고 날뛰게 하는 방법이 된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문학 속에 표현된 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카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첫 문장으로 간단히 설명한다. 그 첫머리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전보로 받은 사실이 나오는데, 이것은 정보화 자체보다 그 배경이 되는 의례의 붕괴를 의미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벤야민은 공동체적 의식의 붕괴는 체험의 정보화를 가져온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을 상술하고 있다.이어서 문학적 전달력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 모든 시의 본질적인 전달은 침묵의 전달이며, 비어있는 공간의 제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대부분의 시가 산문보다는 짧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시라는 것이 개념적 의미전달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라면서 말이다. 또한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 일어난 일들은 근본적으로 몸짓이나 표정을 통한 교감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한다. 소설의 재미란 어떤 특정 인물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얻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며, 소설에서의 전달은 소설의 주인공이 그의 관점에서 살아가는 세계가 다시 우리의 관점 속에 구축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기에서 전달되는 것은 주관과 주관, 마음과 마음이란 말이다. 한편 우리가 읽은 모든 글, 모든 책은 외부로부터의 강제일 수 있고, 우리의 자연스러운 삶을 왜곡하고 억압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물질 상태와 가르침을 우리 정신에 삽입하는 행위, 의미 없는, 또는 아직도 의미를 깨우칠 수 없는 사실들을 암기하는 행위가 배우고 책을 읽는 일의 근본적 의미를 왜곡하는 행위라는 것이다.오늘날 입학시험에서 시험되고 정치적 신조로서 검사되는 것들은 대체로 이러한 것들이라면서 우리 사회가 책을 안 읽는 사회라고 개탄하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만큼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있는 사람들도 드물다고 지적한다. 책읽기가 무작정 낯선 것들의 흡수를 의미한다면 자기 소외의 다른 한 표현에 불과하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의 중반부에는 문학예술의 바탕이 되는 사회적 조건이나 정신들에 대한 논의가 펼쳐진다. 여기서 저자의 사회관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홉스의 만인전쟁의 비유는 현재 우리가 한국 사회에서 경험하는 것과 동일하다든지, 사회에 넘치는 불신과 날로 늘어가는 사회폭력, 갖가지 금전과 정치의 폭력을 통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관계로서만 성립되고 있다는 점을 개탄한다. 또한 오늘의 시대 문제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사태를 걱정하고 이른바 물질주의라고 불리는 시대의 병을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으며, 정신가치를 재확립하는 것이 물질주의의 병을 치료하는 길이란 점도 지적한다.1970년대 말 작성된 저자의 글에서 민주화는 오늘날 시대의 강력한 요청이라면서 다른 한편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민주화의 전망에 대하여 불안과 의구심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아직도 민주화의 움직임의 고삐를 국민 스스로 잡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학교 교육에서 주고받는 문답은 우리를 참다운 문제와 해답의 영역으로 안내해 가는 대신 마치 모든 문제는 다 물어졌으며 모든 답은 다 주어졌다는 착각을 가지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우리에게 독자적으로 질문하고 해답을 찾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능력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한국 현대문학에 대한 비평의 글이 이어지는데, 문학의 중요한 기능은 교육의 기능이며, 문학인은 넓은 의미에서 인생의 교사라면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사람의 높은 도덕적 가능성에 관한 것이라 지적한다. 그리고 현대 한국문학의 발생과 전개를 이야기할 때, 삶의 가장 큰 테두리가 되는 것은 식민지 상황이라는 것, 일제 하에 쓰인 문학을 평가하는 데는 이것을 늘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전통사회의 속박으로부터의 개인의 해방을 내세운 이광수의 글들은 식민지적 상황에서 제출된 것으로 개인옹호가 무엇보다 집단의식의 쇠퇴를 원했을 일본 통치자들에게는 매우 편리한 것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또한 전통적 한국에서 말할 것도 없이 가장 중요한 사회집단은 가족이었으며, 많은 현대작가들에게는 맨 먼저 대항하여 싸워야 할 사회적 범주였다고 지적한다. 식민지배의 새 문화와 더불어 전통적 가족이 담당하던 사회화 과정은 새 정치 질서, 새 식민지 문화에 이어질 수 없는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상이 본래의 성 김씨를 버리고 아무렇게나 주워온 성을 자기 성으로 한 것은 성씨로 표현되는 가통의식의 무의미함을 표현하려 한 것이라면서, 한국사람의 성은 의미를 상실했고 그들은 이제 일본의 상 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라 말한다. 이어서 작가와 작품에 대한 비평이 전개되는데, 피천득론에서 저자는 금아 선생의 수필의 세계는 나날의 세계, 나날의 삶에서 우리가 겪는 작은 일들, 그중에도 아름다운 작은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지적한다. 금아 선생의 문장이나 태도는 수필의 본래적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란 말이다.윤동주의 시를 보며 그의 양심의 특징은 밖에서 받아온 어떤 도덕률에서 유도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끊임없는 내적인 성찰에서 얻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그의 출발점은 자기 응시라면서 윤동주에게도 심리적 발전을 통하여 자신의 윤리적 완성을 기하려는 충동이 강하였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리하여 심미적 관심은 그의 내면화를 가져오고 윤리적 관심은 그를 시대의 어두운 장벽에 대결하게 했다는 것이다. 윤동주는 이 세상에서 행동과 고통이 병행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그것을 실존적 결단을 통해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할 뿐 초월적 위안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언급하고 있다. 그의 생애의 지배적 모티브의 하나가 키르케고르에서 처럼 심리적, 윤리적 자기완성이었으며, 윤동주에게 괴로웠던 것은 당대의 사회가 넓은 의미에서 자기완성의 추구를 허용하지 아니한다는 점이었다는 것이다. 한용운에 있어 의지의 윤리적 단련은 우발적 결과가 아니라 그의 중요한 삶의 지향이었다는 것도 지적하고 있으며, 성인에 가까운 진정한 아웃사이더로서 예술가의 원형적인 모습을 가졌다는 김수영론도 전개된다.김수영은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스스로의 감정을 의심하면서 스스로를 의심했다고 말한다. 그가 감정의 정밀성을 통하여 문제 삼은 것은 근본적으로는 그의 비판적 양심에 비추어 정당화하지 않는 일체의 문화적 사회적 우상이었다는 것이다. 산문적 성격이 강한 김광규의 시를 비평하며 대체로 한국 현대시에서 감정의 토로는 시적 표현의 핵심을 이루어왔지만 김광규는 감정이나 직관보다는 머리에 의존하고 있으며, 시대에 대한 관찰, 삶에 대한 반성, 정치와 역사에 대한 고찰을 간결하고 명징한 문장 속에 담아냈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오늘날 예술의 대체적 경향은 단순화하여 말한다면 낭만주의라면서, 현실과 그 건전한 가능성으로부터 유리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예술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의 근본에는 초월에의 의지가 담겨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1980년에 쓴 저자의 글 중에서 세종문화회관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음악과 연극공연을 위하여 지어진 세종문화회관이 우리의 삶에 무엇인가 걸맞지 않는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거기서 공연되는 오페라나 연극이 우리의 전통으로부터 자라나온 것도 아니고 우리의 깊은 내적 요구에 대한 호응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라서 그렇다는 말이다. 또한 우리의 생활 형편이 이국의 예술들을 향유할 만한 것이 아직 못 된다면서 문화의식의 근본은 삶의 조화에 대한 감각이며 문화적으로 가장 중요한 삶의 테두리가 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 공동체라고 언급하고 있다. 사실 모든 문화적 업적은 공동체의 필요로부터 나올 때 비로서 참다운 것이라면서, 세종문화회관이 서울 시민의 자연스럽고 민주적인 요청에 의해 건립되고 활용될 때 그것은 우리 사회의 참다운 기념비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러한 문화적 요청은 우리의 삶이 살 만한 질서를 이루었을 때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어려운 이야기들이 꽤 많이 나오고, 하나의 주제를 여러 각도로 살펴보면서 저자 스스로도 호응하고 있는 변증법적 논리에 따라 전개되어 글의 호흡이 상당히 길다. 이런 글들은 아무래도 해제 같은 것이 좀 있었으면 하는 게 독자의 한 사람으로 바램이다.
체념의 조형 은 문학뿐 아니라 역사, 정치, 예술, 철학 등 인문학 전반을 아우르는 무변광대(無邊廣大)한 김우창의 사유(思惟) 50년의 궤적이다. 문학과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행하는 이 책은 한국문학사에서 고전으로 길이 남을 것으로 평가된다. 체념의 조형 은 다시 출간하는 나남문학선의 첫 번째 책으로, 이는 문학에 쉬이 접근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문학과 담을 쌓았던 현대인들에게 다시금 참된 문학을 일깨우는 장을 열 것이다.

?전체성의 모험: 글쓰기의 회로 나남 문선(文選)의 출간에 부쳐서 김우창

Ⅰ. 문학이란 무엇인가
1. 헌책들 사이에서
2. 문학적 송신:시적 전달의 양식
3. 읽는 행위의 안팎
4. 주체의 형식으로서의 문학:작품해석의 전제에 대한 한 성찰

Ⅱ. 문학예술의 바탕
1. 꽃과 고향과 땅
2. 나와 우리: 문학과 사회에 대한 한 고찰
3. 상황과 판단
4. 물음에 대하여:방법에 대한 시론

Ⅲ. 사회 속의 인간, 현실 안의 문학
1. 문학의 현실참여
2. 일제하의 작가의 상황
3. 구체적 보편성에로:역사와 문학의 관계에 대한 한 고찰

Ⅳ. 반성적 비판적 사유
1. 사고와 현실:김윤식의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 와 근대한국문학연구
2. 비평과 이데올로기
3. 문화ㆍ현실ㆍ이성:유종호의 문학과 현실
4. 실천적 관심과 이상적 언어:하버마스의 비판이론
5. 이성적 사회를 향하여

Ⅴ. 고요ㆍ맑음ㆍ양심ㆍ내면성-문학의 추동력
1. 고요함에 대하여
2. 작은 것들의 세계:피천득론
3. 시대와 내면적 인간:윤동주의 시
4. 일체유심:한용운의 용기에 대하여
5. 예술가의 양심과 자유:김수영론

Ⅵ. 심미감각-경험과 형이상학 사이
1. 예술과 삶:그 일치의 가능성에 대한 고찰
2. 예술과 초월적 차원
3. 아름다움의 거죽과 깊이:심미 감각과 사회
4. 심미적 이성:오늘을 생각하기 위한 노트

Ⅶ. 시적인 것의 의미
1. 시의 상황
2. 시ㆍ현실ㆍ행복
3. 어둠으로부터 시작하여: 시의 근원-변영로의〈봄비〉와 김현승의〈검은 빛〉
4. 궁핍한 시대의 시인:한용운의 시
5. 언어적 명징화의 추구:김광규의 시
6. 관찰과 시:최승호의 시에 부쳐

Ⅷ. 비교문학적 비교문화적 차원
1. 세계와 문학의 세계
2. 문학의 비교연구와 세계문학의 이념: 범위와 방법에 대한 서론
3. 문화공동체의 창조: 우리 문화의 목표

?작가론
문학의 동심원적 구조: 김우창 문학선 에 즈음하여 문광훈
?김우창 연보